성병숙 서송희 남편

스타에세이|2019. 8. 21. 21:37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는 성우 출신 배우 성병숙에 대해 알아볼까요. 성병숙은 1977년에 TBC 공채 성우로 들어갔는데요. 1980년에 언론통폐합이 되면서 KBS 제15기로 신분이 바뀌었죠.

 

 

당시 활동했던 김정애, 김환진, 안경진, 이정구, 한인숙과 동기인 성병숙은 '도와줘요 뽀빠이!'를 외치는 올리브 역할로 유명했는데요. 주로 1990년대에 애니메이션 더빙에 다수 출연했습니다. 성병숙의 대표적인 작품은 쥐라기 월드컵의 히로인 팜과 레스톨 특수구조대의 왈가닥 소녀 펑키가 등이 있죠.

 

 

그런데 성병숙은 가정사가 정말 복잡하죠. 성병숙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했으니까요. 성병숙 첫남편과는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이혼을 했죠. 이후 성병숙 두 번째 남편을 만나게 되지만, 행복하지 못했죠.

 

성병숙은 남편의 사업 실패로 100억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으니까요. 특히 성병숙 남편은 IMF로 인한 사업 실패 후 빚을 갚지 않고 해외로 도망가 버렸는데요. 이 때문에 그 많은 빚을 성병숙이 다 떠 앉고 살아가야 했죠.

 

 

당시 성병숙은 남편이 함께 도망갈 것을 제안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해요. 그 이유는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아마도 성우라는 꿈을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도망간 후 정말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죠.

 

채권자들이 생방송 현장에도 찾아와 돈을 달라고 요구할 정도였으니까요. 더군다나 그땐 이혼을 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성병숙이 고스란히 모두 떠안아야 했죠.

 

 

결국 딸의 불행을 지켜보다 못한 아버지가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마는데요. 안타깝게도 투병 생활 8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성병숙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더욱더 크다고 하죠. 삶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을 때 붙잡아준 것이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이었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성병숙은 포기하지 않고 일어섰죠. 그리고 두 번째 남편과 이혼 후 더욱 악착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힘든 날이 지속되기는 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죠. 그러나 여자 혼자사 아이까지 데리고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죠.

 

 

결국 점점 형편이 어려워 지자 성병숙은 아홉 살 딸을 친아빠에게 보내야만 했지요. 하지만 딸을 보낸 후 오히려 성병숙은 더 힘든 날을 보냈다고 해요. 딸의 환청이 자주 들려서 정신과 치료를 생각할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상처를 받은 건 성병숙 딸 서송희도 마찬 가지였죠. 당시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한 성병숙 딸 서송희는 엄마에게 자신을 "왜 낳았느냐"라고 따질 정도로 깊은 상처를 받았으니까요.

 

 

그렇게 엄마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던 어린 딸에게 다가가기 위해 성병숙은 이를 악물고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나 딸과 화해를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딸이 자라면서 엄마가 당시 그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한 게 아닐까 싶네요.

 

 

 

한편 성병숙 딸 서송희는 엄마를 따라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죠. 그러나 불후의 명곡에서 엄마와 함께 출연한 적은 있지만, 드라마 같은 대표작은 없는데요. 아마도 이번 계기로 방송 활동을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성병숙 딸이라고 해도 연기를 잘해야 인정을 받겠죠.

 

아무튼 살면서 많은 고생을 해온 성병숙과 그의 딸이 행복하길 응원하며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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